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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신 교수의 ‘맛 이야기’]
생존을 위한 후각 그리고 맛의 다양성을 결정하는 향

작성자 농심몰(ip:)

작성일 2023-08-04 16:57

조회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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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일을 인공지능이 잘하다 보니, 현재 우리가 선호하는 직업을 인공지능이 많이 가져갈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연구자는 남이 하지 않은 것을 알아내고 검증하는 전문가이다 보니, 미래가 어떻게 변해갈 것인가를 많이 생각해야 더 나은 연구자가 될 수 있고, 그래서 미래의 방향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나 또한 연구원·연구교수·연구 전문회사 대표 등 평생 연구를 하며 살다 보니 내가 하는 식생활 분야가 미래에는 어떤 위치에 있을까를 늘 생각하며 살게 된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효율성이 높아져서 일하는 시간은 줄고 노는 시간은 길어지게 된다. 나 어릴 때는 어른들이 토요일에도 직장을 당연히 갔다. 그러나 지금은 주 5일 근무가 당연시되었고, 주 4일 근무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어려운 일을 하고 사람은 인공지능이 만들어 놓은 부가가치로 더 많은 휴일이 생길 것이고, 그러면 삶을 즐기는 산업이 커질 수밖에 없다. 삶을 즐기는 것 중 먹는 즐거움은 인간의 생활에 있어 가장 큰 영역이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이전에는 ‘미식가’라는 것이 소수의 부자에게나 있는 현상이었으나, 지금은 맛에 관심이 있으면 누구나 즐기는 것이 ‘미식’이 되었다. 사람들은 음식의 맛에 더 관심 쏟고 있는데, 한편에서는 음식을 영양으로 보고 점점 영양에 빠져드는 사람들이 있다. 아이를 둔 부모이다. 아이가 잘 먹어야 키가 크고 건강해진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이려 하고, 안되면 영양제를 먹인다. 영양제는 음식을 대체할 수 없고, 결국은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맛이 있으면 먹게 되어있다. 영양사는 식품 본연의 맛을 잘 살리면서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음식을 어떻게 쉽게 준비해야 할지를 집중적으로 부모에게 교육하고, 부모는 맛있는 음식을 즐거운 분위기에서 먹는 방법을 찾는다면 아이들 먹는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그러면 맛있는 음식을 결정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흔히 혀에서 느끼는 미각을 떠 올릴 텐데, ‘맛있음’은 혀에서 느끼는 맛, 코에서 느끼는 향, 입안 전체의 피부에서 느끼는 식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만들어낸 결과이다. 그 중에서 맛의 다양성은 ‘향’에서 온다. 사실 음식의 맛은 향이 90퍼센트를 좌우한다고 맛 전문가들은 말한다. 감기에 걸려 코가 막혔을 때 음식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가 없던 것을 기억해보면 향이 음식 맛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을 수 있다. 그런데 맛에 있어 향이 중요한지 몸은 저절로 알고 있지만, 이성적인 생각으로는 중요성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맛은 다섯 가지(단맛, 짠맛, 신맛, 쓴맛, 감칠맛)로 아주 분명하지만, 향은 수천~수만 가지로 종류를 정확히 평가할 수조차 없어서 체계적으로 설명하기 힘들어서일 것이다. 전문가들이 추정하는 근거에 의하면, 지구상에는 약 1,200만~3000만 종의 화학물질이 존재하고, 그중 향이 되기 위해 가져야 할 특성인 유기물·휘발성·약간의 친수성·상당한 친유성·분자량 300 이하의 탄소수 16개 이하 등의 조건을 걸어 보면, 향기 물질은 40~50 만종 정도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러나 향 물질은 천연뿐 아니라, 가열이나 발포 등 가공 중에도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 수는 더 많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향을 잘 안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그러나 미식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 향을 잘 아는 것은 필수사항이 되어가고 있다. 밥을 매일 먹다 보니 밥의 향에 대해서 특별히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 한국에서 흔하지 않은 쌀을 사 먹다 보니 쌀의 향이 참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향이 밥맛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먹으면서 경험한다. 그리고 어느덧 쌀 선택의 기준에 향을 고려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국제화되고 있는 세상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맛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향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먹는 측면에서 보면 향은 음식 맛의 일부분이지만, 자연에서 향은 생존을 의미한다. 식물이나 동물은 살아남기 위해 향을 만들어냈다. 동물의 경우 페로몬을 통해 짝을 찾고, 명령을 내리고, 길을 찾아간다. 식물의 향은 동물의 향에 비해 더 다양하고 복잡하다. 실제 자연에서 만들어지는 향 대부분은 식물이 만들어낸다고 보면 된다. 그러면 식물은 왜 이렇게 많은 종류의 화학물질을 합성해야 했을까? 식물은 움직이지 못하니 살아남기 위해 좀 더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식물은 향으로 식물끼리 소통하고, 곤충을 유혹하여 꽃가루를 확산하게 하였으며, 초식동물의 이상 대사를 유발하여 먹지 못하게 하였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피톤치드는 다른 식물의 생장을 억제하여 자기의 영역을 확장하고자 만들어낸 향이다.  


 자연의 향이 생존을 위해 사용되는 것처럼, 동물의 후각 또한 생존을 위한 감각이다. 포유류는 냄새를 통해 먹이를 찾아내고, 먹으면 안 되는 식물을 가려낸다. 소리나 시각보다 먼저 냄새로 먼 거리의 포식자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생존을 위한 줄행랑에도 후각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지구상의 모든 포유류 ‘후각’이 매우 발달되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다른 진화를 거쳤다. 직립보행을 하면서 시각을 좀 더 활용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후각’은 퇴화되었다. 현대의 성인은 감각의 70%를 시각에 의존한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세상은 시각적인 것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의 확산은 시각의 중요성을 더 확산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성인과 달리 아기에게 후각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동물의 세계에서 후각이 생존에 중요한 것처럼 아기도 생존을 위해 후각에 많이 의존한다. 후각은 인간이 태어날 때 가장 발달해 있는 감각이다. 빛이 없는 뱃속에서 시각을 발달시킬 수 없는 아기는 시력이 거의 없는 상태로 태어난다. 갓 태어난 아기는 색을 구별하지 못하고, 심한 근시여서 30cm 이상 떨어진 물체는 구별하지 못하며, 태어난 지 수개월이 지나서야 눈을 맞춘다. 시각이 충분한 역할을 하기 전에 후각이 세상을 감지하는 역할을 한다. 태아의 후각신경은 임신 7주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여 14주부터는 어른과 비슷한 구조를 가지게 되며, 임신 28주부터는 어른과 같은 정도도 성숙하여, 태아는 양수를 통해 엄마의 냄새와 엄마가 먹은 음식의 향을 기억한다. 냄새의 기억을 바탕으로 출생 후 엄마를 알아내어 엄마 옆에서 정서적 안정감을 가지며, 엄마가 먹은 음식을 알아내어 그 음식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출생 후 아기가 처음 접하는 음식에 대해서 본능적으로 경계를 보이지만 임신기에 엄마가 먹은 음식에 대해서 경계를 푼다는 것은 뱃속에서 후각으로 얻은 향이 안전함에 대한 정보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는 결과이다.  


 처음 접하는 음식이라도 단맛, 짠맛, 감칠맛에는 선호를 보이고 쓴맛, 신맛에 대해서는 거부가 강한 것처럼, 향 또한 에너지를 의미하는 달콤한 향, 단백질을 의미하는 고기향에 대해서는 선호를 보이고, 채소의 향에서는 높은 경계감을 보인다. 야생 식물을 먹고 아프거나 죽음을 경험했던 포유류가 냄새로 위험함을 확인하는 것처럼 아기의 본능이 냄새로 위험을 거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얼마 전 어린이집 아이들에게 ‘거의 먹지 않는 음식이 무엇인가’ 물어보니 깻잎과 오이가 나왔다는 결과가 흥미롭다. 현재 내가 사는 미국의 미시건주는 대부분 집에 담이 없고 주변에 나무가 많아서 사슴, 토끼 같은 야생 동물이 마당에 자주 출몰해 집에서 키운 채소를 다 먹어 치우지만 유독 깻잎은 전혀 건들지 않는다. 사람과 동물에게 같은 본능이 작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다.  



<그림 1. 후각과 뇌 기능 >


후각은 다른 감각과 달리 뇌 발달과 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후각세포·후각신경·후각 중추가 종합적인 사고와 감정조절을 담당하는 전전두엽·감정을 담당하는 편도·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의 연결 지점에 있으면서 기억·감정·학습에 밀접하게 관여를 한다. 특정한 향기를 맡으면 과거의 기억이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프루스트 현상’이 나타나고, 후각을 활용한 학습은 기억력 향상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특정 음식을 먹고 트라우마가 생겼다면 냄새는 그때의 나쁜 상황을 계속 상기하게 할 수 있다. 아이가 특정 음식을 먹지 않으려고 한다면 억지로 먹이려고 노력하기 전에 왜 그러는지 생각해야 한다. 그중에 꼭 고려해야 할 것이 냄새이다. 냄새 자체가 싫은 것인지 냄새에 연관된 나쁜 기억이 있는지...  


시각적인 것이 휩쓸고 있는 현대 사회를 잘 들여다보면 후각이 여전히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냄새는 사회적 계급, 문화적 차이를 만들어낸다. ‘기생충’은 냄새라는 요인을 적절히 넣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사회적 구분을 넌지시 이야기하는 영화이다. 미국에서 살다 보면 냄새는 각국의 문화적인 차이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실감한다. 지금은 글로벌화 하면서 음식의 경계가 많이 깨졌지만, 15년 전 미국에서 공부할 때를 생각해보면 김치 냄새는 한국인을 차별하는 요인 중 하나였다. 인간 사회의 바탕에 흐르고 있는 냄새의 의미를 통찰력 있게 관찰하는 태도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항상 필요하다.  




🔊 출처 : 누들푸들 (주)뉴트리아이 대표 한영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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